1962 FIFA 월드컵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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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 칠레에서 개최된 7번째 FIFA 월드컵. 1950년 대회 이후 12년만에 남미에서 개최한 대회이다. 54, 58년 대회를 연속으로 유럽에서 치루면서 남미에서 월드컵을 개최할 차례가 되었다는 명분과 함께[1]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경합을 했고, 최종적으로 칠레가 개최권을 획득했다.
32경기에서 89골이 터져 경기당 평균 2.78골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경기당 2점대 평균득점이 나온 월드컵으로[2] 이후의 월드컵들은 전부 경기당 2점대 평균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 월드컵의 기본적인 틀이 점차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이 대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조별리그에서 승점동률팀이 발생할 경우 지난 대회까지만 해도 양팀간 플레이오프를 치뤄야했지만 칠레 대회서부터는 플레이오프 없이 GAv 개념을 적용했다. 이는 조별리그에서의 득점을 실점으로 나눠 그 수치가 큰 팀에게 우위를 주는 제도이다. 다만 이것은 본선에 한해서이고 지역예선에서는 여전히 GAv 개념이 없어서 승점동률팀간 플레이오프가 치뤄져야 했다.
2. 지역예선
이 대회에서는 북중미, 아시아, 아프리카에 0.5장의 티켓을 부여했는데, 북중미 단골손님 멕시코가 1무 10패로 부진하자 북중미까지 타대륙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했다. 북중미는 남미와, 나머지 두 대륙은 유럽팀과 최종전을 펼쳐야 하는 악조건이 부여되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현대 월드컵처럼 조2위팀 중 성적 좋은 나라가 플레이오프로 가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룰 조가 결정되어서 그 조의 1위가 플레이오프로 나가는 형식이었다. 북중미의 경우 멕시코가 파라과이를 이기고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지만, 아시아의 한국은 유고슬라비아에게, 아프리카의 모로코는 스페인에게 밀려 본선을 밟지 못했다. 결국 이 대회는 유럽과 남미팀의 전유물(+북중미 1장을 따낸 멕시코)이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 중국축구협회가 모택동 주석의 지시로 FIFA와 아시아축구협회를 탈퇴하여 국제 활동을 오랫동안 중단하였다.
불가리아와 콜롬비아가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지난 대회 준우승팀과 3위 스웨덴과 프랑스는 승점 동률로 인한 플레이오프 끝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3. 경기장
당초 산티아고, 비냐 델 마르, 랑카과, 아리카, 탈카, 콘셉시온, 탈카우아노, 발디비아 8개의 도시에서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1960년에 일어난 칠레 대지진으로 인해 대회 조직위는 4개 도시로 축소하기로 했다. 탈카와 콘셉시온, 탈카우아노, 발디비아는 심각하게 손상을 입어 경기장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면서 산티아고와 비냐 델 마르, 랑카과, 아리카에서 열리게 되었다.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총 4개의 도시와 구장에서 열렸다.
- 란카구아 - 에스타디오 브라덴 코페르 (Estadio Braden Copper Co.) (18,000명)
- 비냐 델 마르 - 에스타디오 사우살리토 (Estadio Sausalito) (18,037명)
- 산티아고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Estadio Nacional) (66,660명)
- 아리카 - 에스타디오 카를로스 디트보른 (Estadio Carlos Dittborn) (17,786명)
4. 대회진행
본선 진출 16개국은 다음과 같다.
- 유럽 : 스위스, 불가리아, 서독, 헝가리, 소련, 잉글랜드,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
- 남미 : 칠레(개최국), 브라질(디펜딩챔피언),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콜롬비아
- 북중미-남미 플레이오프 : 멕시코[3]
- 유럽-아시아 플레이오프 : 유고슬라비아[4]
- 유럽-아프리카 플레이오프 : 스페인[5]
4.1. 조별예선
1962 FIFA 월드컵 칠레/조별 리그 1조&2조
1962 FIFA 월드컵 칠레/조별 리그 3조&4조
1조에서는 소련이 유고슬라비아, 우루과이라는 강호를 모두 꺾으며 손쉽게 8강에 진출했다. 다만 콜롬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후반 23분까지 4:1로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소련 GK로 명성을 떨치던 그 '''레프 야신'''이 불과 18분만에 3골을 연달아 헌납하며 무승부를 기록한게 옥의 티로 남는다. 유고슬라비아는 우루과이와 콜롬비아를 모두 잡으며 조2위로 8강에 안착했다. 우루과이 국대는 더 이상 과거 세계최강의 팀이 아니었다.
2조에서는 스위스가 승점자판기 신세가 되어 3전패로 광속탈락하는 와중에 서독이 홈팀 칠레를 잡고 이탈리아와 비기며 2승1무로 8강에 진출했다. 이탈리아는 첫 경기 서독전 무승부에 이어 2차전 칠레와의 경기에서 홈버프를 받은 칠레에게 패하며 광탈. 칠레가 마지막 경기에서 서독을 잡아주었으면 가능성이 있었으나 이탈리아가 마지막 경기를 치루기 전에 이미 서독이 칠레를 잡은 후였다.
참고로 칠레와 이탈리아의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아니 축구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경기로 악명이 자자하다.[6] 자세한 내용은 이곳을 참고
3조에서는 대혼전이 일어났다. 첫 경기에서 브라질은 신성 펠레의 1골 1어시스트로 멕시코에 2:0 완승을 거두었지만 그 직후 펠레는 부상으로 전 경기 결장.(…) 이후 브라질은 체코슬로바키아와 0:0 무재배를 하고 스페인에 끌려다니다가 후반에 내리 2골을 넣어 2:1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나머지 3팀간에는 멕시코 > 체코슬로바키아 > 스페인 > 멕시코라는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서로 물고 물리는 형국이 되었으나 그중 유일하게 브라질에 비긴 체코슬로바키아가 2위로 본선에 합류했다.
4조에서는 헝가리가 옛 매직 마자르의 명성을 되찾는듯 잉글랜드와 불가리아를 연파하며 2승1무 조1위로 8강행을 확정지었다.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에 이기고 불가리아와 비기며 1승1무1패, 아르헨티나는 불가리아에 이기고 헝가리에 비기며 역시 1승1무1패 동률이었으나 GAv에서 앞선 잉글랜드가 조 2위로 8강에 합류한다.
4.2. 토너먼트
8강 1차전에서 홈팀 칠레는 야신이 버티는 소련에 2:1로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반면 소련은 조별리그 콜롬비아전에 이어 또 2실점을 하며 무너지자 골키퍼 야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8강 2차전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동유럽 이웃국가 헝가리에 1:0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제2착했다. 결국 매직 마자르는 부활의 찬가를 4년 뒤로 미뤄야했다.
8강 3차전은 이 대회 최고의 빅매치인 잉글랜드 vs 브라질이었다. 잉글랜드는 이번에야말로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만천하에 세우겠다며 벼르고 별렀고, 마침 브라질은 펠레가 부상으로 빠진 상태였다. 그러나 브라질에는 펠레 대신 '''가린샤'''가 있었다. 전반 31분 가린샤의 선취득점 이후 전반 38분 잉글랜드가 동점골을 넣자 후반 8분 바바가 다시 결승골을 넣고, 후반 13분에 갸린샤의 쐐기골이 작렬하며 경기는 3:1로 끝난다.
8강 4차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가 서독을 1:0으로 꺾으며 4강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4강 1차전, 체코슬로바키아는 유고슬라비아에 3:1 완승을 거두며 1934년에 이어 두번째로 결승행을 이룬다. 그리고 브라질과 칠레의 4강 2차전. 브라질은 다시 가린샤가 2골을 연이어 넣으며 전반 42분 1골을 만회한 칠레에 2:1로 앞서나갔다. 후반 2분, 바바가 1골을 추가하며 3:1로 승기를 굳히는가 싶던 경기는 후반 16분 칠레의 패널티골로 다시 1점차로 좁혀졌다. 결국 바바가 후반 33분 쐐기골을 넣은 후에야 승패의 향방이 가려졌고, 브라질은 월드컵 2연패에 마지막 1승만을 남겨두었다.
3/4위전에서 칠레가 후반 45분에 터진 결승골로 유고슬라비아를 1:0으로 이기며 3위를 확정지었다.
대망의 결승전. 전반 15분 체코슬로바키아의 선제골이 터지지만 2분 뒤 바로 브라질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전반전 45분은 팽팽하게 흘러갔다. 그 균형은 후반 24분 브라질의 지투에 의해 깨졌고, 어떻게든 동점을 막으려던 체코슬로바키아의 공격은 후반 33분 바바의 쐐기골로 기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브라질은 월드컵 2연패를 달성하며 명실상부 세계 최강임을 입증한다.
1962 FIFA 월드컵 칠레/8강 이후
5. 결과
[1] 만일 이번대회가 남미에서 열리지 않았을 경우 남미 국가들은 일찌감치 1934년, 1938년 대회 때처럼 보이콧하려 했었다고 한다.[2] 이전 대회까지 가장 적은 평균득점을 기록한 대회는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으로 경기당 3.60골이었다.[3] 파라과이를 꺾고 올라왔다.[4] 한국을 꺾고 올라왔다.[5] 모로코를 꺾고 올라왔다.[6] 2006년의 그 뉘른베르크의 전투도 이 경기 앞에선 한 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이 경기는 개판이었다.(...)